top of page

빛으로 나타난 아프리카


"어떻게 아프리카를 가게 되었나요?” 많은 사람들이 질문한다.

“아프리카는 제가 ​​가고 싶어 간 곳이 아닙니다. 지금도 저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아프리카의 부족 마을로 가진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계셔서 기뻐하며 따라 갔습니다.”

진솔한 대답이다. 1993년에 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했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선교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을 따라가기 때문에 모든 선택권은 그 분에게 있다. 난 선교사다. 부족 마을까지 인도하신대로 따라가 선교사가 없는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내가 절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 동행을 시작한 것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대학 시절 예수님이 믿어졌다. 이 믿음이 생기기까지 근 3년이 걸렸다. 미국으로 고학을 하러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교회와 담을 쌓고 살았을 것이다. 14살때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떠나 미국에 있는 고모집으로 왔다. 그리고 2년후 독립을 해야 했고 고등학생때부터 일을 하여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충당하며 공부을 했다.

12살때 “미국으로 가서 고학을 하겠느냐?”고 아버지가 세 아들을 앉혀 놓고 물으셨다. “고모가 도와 준다고는 하지만 가면 고학을 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까지 덧 붙이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사는 인생보다 넓은 세계속에서 살고 싶은 단순한 마음에 “네. 저는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반대로 형은 안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2년의 준비 기간이 걸려 동생과 함께 미국에 온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김포공항에서 부모님을 떠나는 날도 헤어짐을 실감하지 못한 어린 아이였다. 기약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도 울지 않았고 들뜬 마음으로 탑승장 안으로 들어 왔다. 함께 출국을 하는 고모는 너무 씩씩한 우리의 모습을 보며 의아해 했다. “이제 미국 가면 언제 다시 한국에 올지 모르는데 너희들 괜찮나?”라고 물어 보셨다. 그제서야 떠나감을 실감했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쪽으로 되돌아 가 보았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인사를 나눈 그 자리에 아직 부모님이 서 계신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의 어깨를 기대며 통곡을 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어쩔줄 모르는 아버지는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서 계셨다. 어린 두 아들을 외국에 보내면서 참았던 눈물을 실성한 사람처럼, 아들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흘리고 계셨다.

돌아섰다. 부모님이 나를 보기전에 뒤돌아 급하게 걸었다. 혹시 나를 보면 더 마음이 아프실까봐, 아니, 혹시 못 떠나게 할까봐 뒤돌아 선 것이다. '이별의 아픔은 잠깐이다. 이 기회를 놓칠순 없다'고 생각하며 울면서 화장실을 향해 달려가 흘린 눈물을 씻으면서 다짐했다. 꼭 성공해서 돌아 오리라고...

미국에서 시작한 고학은 배낭을 메고 험한 산을 넘고 또 넘는 것 같았다. 잘 곳이 없어 몇달 동안 지인의 사업체 옆에 붙은 창고에서 생활 할때도 있었고 월세를 아껴 대학비를 모은다고 차에서 3개월 동안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나 힘들다고 좌절하거나 괴로워할 시간 조차 없었다. 어렸지만 스스로 택한 길이었기에 꼭 아메리칸 드림을 혼자 이룰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고등학교 수업이 오후3시쯤 끝나면 바로 알바를 3시부터 밤11시까지 했고, 주말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시계와 썬글라스 파는 비지니스를 넓은 주차장 같은 곳에서 했다. 주말에만 생기는 시장(Swap Meet) 같은 곳에서 한자리를 대여받아 장사를 한 것이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자급자족하며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입학 통지서가 우편함에 도착했을 때, 혼자 걸어 폭풍속을 뚫고 지나 험한 산을 넘어 목적지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꿈이 다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대학에서 더 중요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나만을 위한 아메리칸 드림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신나는 인생이 시작 된 것이다.

믿어지지 않던 예수님이 믿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부흥회'라는 이상하기만 했던 행사에 친구를 따라가면서 교회에 첫 무거운 발걸음을 시작했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의 얼굴을 봐서 가준 것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주차장에서부터 생소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고, 모임 장소 안으로 들어 서자 “주여! 주여! 주여!”하는 통성기도 소리는 괴성으로 들려왔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은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보였다. 너무 거부감이 들어 조용히 나가고 싶었지만 제일 뒤편에 앉았다.

'미쳤다. 대단히 미쳤다. 어떻게 저렇게 미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무당이 굿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약한 사람들이 신에게 복을 달라고 매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절대 저렇게 안 될거야'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종교를 가지려면 교양있게 믿어야지. 저게 뭐야'라고 속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 나가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배 후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것을 알고 특별히 신경 써 주시는 아주머니들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항상 더 푸짐하게 음식을 주셨고 남은 음식은 싸 주시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교양있는 교인이 되어 갔다. 찬송가도 익숙해져 갔고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청소년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어느새 십일조까지 하는 교인은 되었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었다. 교인이 되었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교회를 나간지 3년쯤 되었을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 가신 것이 믿어지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미지근하게 믿을 순 없었던 것이다. 나도 '주여! 주여! 주여!'하며 기도했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더 '미친' 사람이 되어 갔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가기 시작하였고 보여주신대로 온 가족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떠난 선교사가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따라가는 사람이다. 따라가지 않는다면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 했거나 아니면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교인은 될지 몰라도, 성도는 될 수 없다. 그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 했고 천국을 소유하지 못 했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을 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다.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하면서 '어떻께 하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기도했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께 하면 그 분께 순종하며 살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하며 살아 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신앙을 심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천국 문을 두드리지만 못 들어 갈 자가 많다고 하셨다. 그 중에는 귀신을 내쫒는 사람도 있고 열정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도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예수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도 있지만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누 7:22-23)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다. 영접한 사람은 주님을 모시며 살아가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일을 하며 그분을 따라간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계선교라는 것을 깨달았다. “... 가서 제자 삼으라... 말씀을 땅끝까지 선포하라... 이 천국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질때 그제야 끝이 오리라...” 사복음서만 보아도 선교의 중요성과 절대성을 알 수 있다. 이 깨달음 후 '선교에 어떻게 쓰임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선교를 배워야 겠다는 강한 충동이 생겨서 2년을 선교지에 나가기로 결단했다.

직장을 갖기 전에, 결혼을 하기 전에 선교를 배워 주님이 원하시는 선교에 어떤 모습으로든지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목사가 될 생각도 없었고 장기 선교사로 헌신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선교를 배웠야 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아프리카로 인도하시줄은 몰랐다. 그 것도 석기 시대에 사는 것 같은 부족 마을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2년을 헌신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순히 우리 교단에서 운영하는 2년 선교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가기 전에 미리 선교지를 체험하고 또 선교사를 돕고 훈련받는 프로그램으로 적어도 2년 정도는 되야 그 지역 선교를 폭 넓게 이해 할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선교 프로그램이었다.

그 당시 우리 교회에서 2년을 파송받고 구 소련이었던 우즈백에 간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 분의 선교 편지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젊은이가 전혀 없던 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1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교회에 몰려 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또 제자 양육을 하여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다는 기도편지를 읽으며 우즈백 선교를 기도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 여기에 가서 선교를 배우자'라는 결심이 서게 되었다.

우즈백으로 갈 마음이 들었을 때 바로 담임 목사님께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목사님은 기뻐하시며 기도해 주셨고 추천서도 써 주셨다. 그 다음 날 지체하지 않고 바로 교단의 선교부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어 우즈백 선교를 위해 2년을 헌신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선교부는 쾌히 승락을 했고 졸업하기 1달전에 연락을 줘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에 우즈백으로 보내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했다. 소련어도 한학기 배워 "스트라스 뷰이치에! 다스비 다니아!”하며 언어 훈련도 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교회 모든 사람이 내가 우즈백으로 가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다들 대단한 결정이라며 격려해 주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아주 작은 헌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학 졸업후의 계획이 세워져 근심없이 마지막 학기를 보낼수 있었다.

졸업을 한달 앞두고 '이제 교단 선교부에 연락을 할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 주일날 교회에서 엉뚱한 일이 있었다. 교회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교회 형님이 갑자기 "너, 아프리카로 가면 일 참 잘하겠다"라고 말했다. 성경공부를 하러 들어가는 도중이라 길게 대화 할 시간 없어, “땡큐”하고 지나갔다. 선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것도 아닌데다, 아프리카에 대해 말하던 것이 아니었기에 "웬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시나!"라고 생각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성경 공부가 끝난후 그 형과 대화할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대학시절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 매일 새벽에 홀로 그 곳에 가서 찬양을 하고 말씀을 묵상한 후, “하나님, 당신은 어떤 분입니까?”라고 질문하며, 말씀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 노트에 기록을 했다. 그러는 가운데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갔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져 감을 체험했다.

그날도 여느때 처럼 그 약속의 장소에서 찬양을 한후 말씀을 묵상하고 필기를 했다. 그리고 기도하려고 눈을 감는 순간 갑자기 '아프리카'가 밝은 빛으로 나타났다. 너무 놀라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처음 경험하는 이 신비한 일 때문에 다른 기도는 할 수 없었다. 다만 아프리카에 몰두하게 되었다. 혹시 하나님이 아프리카로 인도하시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프리카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 우즈백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회도, 교단 선교부도 저를 우즈백으로 파송하기로 하였습니다. 러시아어를 공부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전 아프리카 체질이 아닌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비위가 약해서 현지 음식을 먹을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마쳤다. 그날 하루 일과 중에 아프리카는 다시 생각나지 않았고 보통때와 같이 수업을 듣고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이튿날 새벽에도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말씀을 묵상할때까지만 해도 아프리카는 전혀 생각나지 않다가 기도하려고 눈을 감는 순간 또 아프리카가 나타났다. 그 전날처럼 기도했다. "하나님, 말라리아가 있는 아프리카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창과 칼을 들고 다니는 아프리카 부족 사람들에게 갈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전 아프리카 감이 아닙니다. 예수님 잘 아시잖아요." 이 날도 이렇게 기도를 마치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아프리카는 또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삼일째도, 사흘째도, 계속해서 칠일째 까지 똑 같은 일이 반복 되었고 계속 안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은 너무 신기해 하나님께 모든 계획을 내려 놓았다. "주님! 아프리카… 좋습니다. 우즈백 선교의 계획을 내려 놓겠습니다. 진짜 제가 아프리카로 가길 원하시면 가겠습니다. 보여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완전히 내려놓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서 평화가 찾아 왔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아프리카는 아닐거야란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까지 친밀하게 인도하시지는 않을 것이란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진짜 원하시면 아프리카라도 가겠습니다.”라고 배짱을 부린 셈이다.

아브라함에게 딱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계획을 내려 놓을 수 있겠느냐고 시험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믿음의 헌신도를 가늠해 보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결론지었다. 이삭을 바치려고 아브라함이 칼을 들었을때 천사가 나타나 중지 시키시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에게 나타나실까? 타지 않는 불 붙은 가시 떨기 나무에 나타나신 것처럼, 바울에게 광명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신비하게 나에게 까지 나타나진 않으실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아닐것이라고 안심했던 것이다. 성경 말씀을 아침마다 묵상하며 하나님을 믿고 따라 가겠다면서도 친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다. 2000년전에 인간의 몸을 하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었지 오늘도 인도하시는 주님을 체험하진 못한 것이다.

아프리카라도 주님이 인도하시면 가겠다고 다 내려 놓은 바로 그날 대학부를 맡은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잠깐 들리라는 메세지였다. 전도사님 집에 도착해 소파에 앉자마자 전도사님은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로 가지 않겠니?”라고 물어 보시는 것이었다. 토끼 눈을 하며 놀랐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정확했다. 7일 동안 준비 시키시고 모든 것을 내려 놓은 날 전도사님의 입술을 통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확인 시켜 주셨다.

새벽마다 일어났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것을 부인할 길이 없었다. 말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혹여 사람들이 '하나님이 너를 아프리카로 인도하시네'라고 말 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7일 동안 일어난 일을 전도사님께 다 말씀 드리고, 보여주신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했다. 하나님은 가장 적합한 시간에, 마음이 준비된 시간에 나를 찾아 오셨다. 이 계기를 통해 삶속에서 항상 먼저 보여 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되었고 따라가는 삶의 첫 걸음을 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보여주심은 계속되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_암3:7

Featured Posts
Recent Posts
Archive
Search By Tags
No tags yet.
Follow Us
  • Facebook Basic Square
  • Twitter Basic Square
  • Google+ Basic Square
bottom of page